암완치사례

침샘암 [이하선암] 완치사례 수술포기하고 자연치유로 이하선암 완치시키다

자연산약초 2013. 3. 9. 06:50

침샘암 [이하선암] 완치사례 수술포기하고 자연치유로 이하선암 완치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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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은 언제나 예고가 없다. 한 남자의 아내, 두 아들의 엄마, 그리고 자기 일을 가진 여자…

생활 도자기 공방을 운영하던 김영례(50세) 씨에게도 불행은 정말 불현듯 왔다. 듣기도 생소한 이하선암...

 

 그런 암이 있는 줄은 듣도 보도 못한 터였다. 그런데 자신이 그 당사자가 될 줄이야... 꿈에서도 생각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그런 그녀가 재발까지 한 이하선암을 이겨내고 오늘은 웃는다. 여전히 생활 도자기를

굽고 있는 그녀를 만나봤다.


글/ 이은혜 기자

 

5년 전의 불행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의 일이다. 어느 날 문득 귓속이 바늘로 콕콕 찌르듯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김영례 씨는 ‘별일 아니겠지’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하루에 한 번 정도 나타나던 증상이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자주, 더 심하게 나타나자 덜컥 겁이 나더군요.”

병원에 갔다. 의사는 말했다. “신경성인 것 같습니다.” 미덥지 못해 다른 병원에도 가 보았다.

“검사 결과 별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곳에서의 대답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날이 갈수록 귀 아픈 증상은 점점 심해져갔다. 답답했다. 뚜렷한 병명조차

알 수 없어 더더욱 그러했다. 이 병원, 저 병원 안 가본 데가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렇게 1년 동안 병원 순례를 했지만 뚜렷한 병명도 알지 못한 채 귓속을 콕콕 후벼 파는 통증은

 점점 심해져 갔어요. 심지어 머리까지 빠개질 듯 아프기 시작하면서 그야말로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워

 견딜 수가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더 이상 참지 못할 정도가 됐을 때 종합병원에 한 번 가보자며

간 곳이 바로 서울아산병원이었어요.”

그런데 이것저것 검사를 마친 의사의 낯빛이 어두웠다. 불안했다. 아니나 다를까 진단 결과는 상상조차

 못한 일이었다. 암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던 것이다. 이하선암이었다. “처음에는 잘 알아듣지 못했어요.

 이하선암이 뭔지 너무도 생소했거든요. 그런 제게 의사는 말하더군요. 오른쪽 안면신경선에 암세포가

생겨서 안면신경선을 제거한 후 이식수술을 해야 한다고. 그러면서 하는 말이 오른쪽 안면이 돌아올

확률은 거의 없다고...”

믿을 수가 없었다. 안면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그럼 내 얼굴이 도대체 어떻게 된다는 뜻일까? 혼란스러웠다.

무엇보다 얼굴에 문제가 생긴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럴 리 없다고, 혹시 오진일지 모른다며

 삼성서울병원에도 가보았다. 그러나 진단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하선암이라는 진단이 내려졌고

수술을 빨리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조금은 희망적이었다. 수술 후 오른쪽 얼굴에 마비가 올 수도 있지만 8개월에서 1년 6개월 정도

지나면 정상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고 했다. 결국 수술 날짜가 정해졌고, 장장 11시간 동안의 긴 수술이

시작됐다. 안면신경 줄기에 암세포가 있어서 그 줄기를 제거한 뒤 발등에 있는 신경선을 떼어다가 이식하는

 대수술이 진행됐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암세포는 제거됐지만 그 후유증은 참으로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얼굴의 오른쪽이 전부 마비가 되었으니까요. 그러다보니 오른쪽 얼굴과 왼쪽 얼굴이 서로 비대칭을 이뤄

보기에도 끔찍했어요. 게다가 오른쪽 눈은 깜빡일 수조차 없었고, 잠을 잘 때도 감기지가 않았어요. 밥을

 먹기도 힘들고...아마도 그 절망감은 당해보지 않으면 모를 거예요”

이때부터 그녀는 세상과 담을 쌓았다. 철저한 은둔생활을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자살을 생각했지만

그때마다 아들들 얼굴이 아른거려 차마 죽지도 못했다고 한다.

 

‘꿈틀’ 움직임에 희망이 싹트고...

너무도 변해버린 얼굴... 절망스런 하루하루가 세월을 축냈다. 오른쪽 얼굴은 여전히 마비된 채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고, 그런 고통 속에서 김영례 씨의 절망도 깊어갔다. 그러나 절망도 깊어질대로

깊어지면 분명 그 끝은 있나보다. 작은 희망 하나가 그녀를 들뜨게 했다. “8개월 정도가 지났을 때예요.

그날도 속상한 마음으로 거울을 보고 있는데 오른쪽 입가가 ‘꿈틀’하고 움직이는 게 아니겠어요.

그때의 그 기분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하늘로 날아오르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비로소 ‘이제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이때부터 그녀의 오른쪽 얼굴에도 서서히 감각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얼굴을 끌어당기는

 듯한 느낌도 들면서 그녀는 비로소 예전의 웃음기를 되찾을 수 있었다.

“정말 감사하고 또 감사했어요. 비록 예전의 모습을 완전히 회복한 건 아니었지만 감각을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이고 은혜였으니까요.” 이때부터 그녀는 다시금 세상 속으로 들어갔다. 사람들과도

어울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행복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또 다른 시련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재발, 그리고 뜻밖의 선택

“지금으로부터 2년 전, 어느 날 아침 샤워를 하는데 귀 뒤쪽의 수술자리가 간지럽다는 느낌이 얼핏 들더군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그쪽을 만져보니 수술했던 부위가 제법 도톰해져 있는 게 아니겠어요?” ‘별일 아니겠지.’

 처음에는 애써 담담한 척 했다고 한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근질근질 가려우면서 점점 더 두툼해지기 시작했다.

 “순간 ‘재발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곧바로 병원 예약을 했는데 대기 환자들이

많아 20일 동안이나 기다려야 했어요.”

그런데 그 20일 동안 참으로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근질근질 가렵던 수술 자리에 혹이 하나 생기더니

 나날이 커져 갔던 것이다. 그 속도가 무서웠다. 하룻밤 자고 일어나기가 무서울 정도였다고 한다. 그리고

20일 정도가 지났을 때 김영례 씨의 귀 뒤쪽에는 커다란 방울토마토가 하나 달려 있었다.

“예약한 날이 되어 병원에 갔더니 이를 본 의사가 기겁을 하더군요. 이렇게 되도록 내버려두었다고 혀를

내둘렀으니까요. 수술도 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황이라면서 우선 검사부터 해보자고 하더군요.”


검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 많은 검사를 하루 만에 다할 정도로 그녀의 증상은 다급하고도 위급했다.

 비로소 모든 검사가 끝났을 때 그녀는 짐작했다. 분명한 재발이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또 수술을 하면

얼굴이 어떻게 될지… 그것은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었다. 또다시 지난 세월을 반복해서 살 자신도 없었다.

 그럴 바에야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그래서 짐을 챙겼어요. 그리고 경남 하동에 있는 벧엘수양원으로 들어갔어요. 제발 수술하자며 붙잡는

가족들의 애원을 모질게 뿌리치고 귀 뒤쪽에 방울토마토 만한 암세포를 하나 달고… 찌릿찌릿 소름 끼칠

정도로 심한 통증을 참으며 그렇게 길을 나섰어요.”

 

포기한 자리에서 새 삶이 열리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찾아든 곳, 벧엘 수양원. 이곳에

도착한 김영례 씨가 가장 먼저 한 일은 11일간의 과일

단식이었다고 한다. 끼니 때마다 한 가지 과일과 물만

먹는 생활을 시작했다. 하루 두 끼를 그렇게 먹었고,

 

저녁은 먹지 않았다. “그렇게 이틀 정도가 지났을까요?

몸이 놀랐는지 밤새 앓았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시커먼 숙변이 나왔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 후로 몸이

개운하면서 그렇게 아픈 통증이 거짓말처럼 싹 사라진 거예요. 찌릿찌릿 아프던 통증이 사라지니

정말 살 것 같더군요.”

그렇게 해서 11일간의 과일단식은 끝이 났고, 12일째 되는 날부터는 보식을 시작했다고 한다.

 

“보식은 현미밥 조금과 채소 조금을 꼭꼭 씹어 입에서 죽으로 만들어 먹었습니다. 그런데 보식을

시작하고 하루 정도가 지났을 때 큰 방울토마토 만한 암세포가 간질간질하면서 불그스름해지더군요.

그리고 또 3일쯤 지났을 때 둥그렇게 봉긋하던 것이 산처럼 뾰족해지더니 스치기만 해도 아프기

시작하면서 색깔도 시커멓게 변해갔어요.”

그러더니 서서히 물렁물렁해지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20일 정도가 지난 어느 날,

 아침 예배를 보려고 머리를 감던 김영례 씨는 깜짝 놀랐다. 머리 뒤쪽에서 뭐가 흐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고름덩어리처럼 누런 핏물이 왈칵 쏟아지기 시작한 거였어요. 산처럼 뾰족하게 변해져

있던 암세포가 곪아 터진 거였는데 직접 제 손으로 그것을 짰어요. 그랬더니 혹의 크기가 2/3로 줄어들더군요.”

그 후로도 서너 번 정도 곪아서 터지기를 반복하면서 진물이 나오고 또 나오고를 반복했다. 그리고 그렇게

 두 달 정도 흘렀을 때 암세포가 생긴 부위에는 딱지가 생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제 얘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딱지가 생긴 후로 수양원을 나왔고, 오늘날 이렇게 건강하고 소중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답니다. 수양원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병원에서 검진을 받았는데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그러더군요.

정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겁니다.”

아직도 머리카락을 들추면 오른쪽 귀 뒤에 암세포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있는 김영례 씨. 비록 잠을 잘 때

 아직도 눈이 감기지는 않지만 그녀는 자기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여전히 빛나는 미모의 소유자다.
생활하는 모습도 일반인과 많이 다르다. 수양원에서의 생활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고 한다. 김영례 씨는

믿고 있다. “수양원 생활이 암을 이기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도 그 생활을 꼭꼭

지키며 살고 있답니다.”


 

이하선암 이겨낸 김영례 씨의 조금 남다르게 사는 모습

▶ 물은 하루에 1.8리터를 꼭 마신다. 아침 기상하자마자 500cc를 마시고, 매 식사 2시간 후부터

수시로 마신다.


▶ 주 5일 이상 등산을 한다.


▶ 해가 넘어가면 세상 없어도 집에 들어가고 9시가 되면 반드시 잠자리에 든다.


▶ 간식, 과식, 외식은 절대 안 한다.


▶ 식사는 하루 2식을 하고 채식 위주의 식생활을 한다. 육류와 생선까지도 먹지 않는다.

▶ 음식의 간은 천일염을 볶아 만든 볶은 소금으로 하고 다시마와 표고버섯으로 육수를 낸 뒤 그 물로 볶아

 먹고 익혀 먹는다.


▶ 김치를 담글 때도 젓갈은 넣지 않는다.


▶ 된장과 간장까지도 안 먹는다.


김영례 씨는 “발효음식의 푸른곰팡이가 환자에게 안 좋을 수도 있다고 해서 먹지 않지만 구수한

된장찌개의 맛은 지금도 너무너무 그립다.”고 말한다.


밥을 먹을 때는 과일을 먼저 먹고 →콩 위주의 단백질→견과류 위주의 지방→현미잡곡밥

위주의 탄수화물→채소류 위주의 식이섬유 순으로 먹는다.

 

이하선암 침샘암 완치사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