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
▲ 새누리당 친박 핵심 윤상현 의원이 지인과의 전화통화에서 "김무성 죽여버려"라고 말한 내용이 담긴 녹취록이 공개돼 파문이 일고 있는 가운데, 윤 의원이 김무성 대표를 만나기 위해 9일 오전 국회 대표실로 향하고 있다. | |
ⓒ 남소연 |
욕설을 해서, 품격이 낮아서 문제가 아니다. 거대 여당의 공직후보자 추천 과정이 대통령과 가까운 몇몇 인사들에게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정황이 현실로 확인된 게 문제다.
지난달 27일 오후 윤상현 새누리당 의원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한 말 중 가장 '센 발언'은 "김무성이 죽여버리게. 죽여버려 이 XX. (비박계) 다 죽여. 그래서 전화했어"라는 부분이다. 하지만 사적인 대화에서 제3자에 대한 증오를 표출할 수도 있다고 본다. 오히려 주목해야할 부분은 다음 발언이다.
"내가 당에서 가장 먼저 그런 XX부터 솎아내라고. 공천에서 떨어뜨려버려 한 거여."
앞 뒤 발언 정황을 종합하면, 윤 의원은 김 대표를 공천에서 배제해야한다는 주장을 이미 한 적이 있고, 전화를 받은 이에게 다시 한번 강조 지시를 한 걸로 읽힌다.
"내일 쳐야 돼! 내일 공략해야 돼."
윤 의원이 말한 대로 서청원·이인제 최고위원 등 친박계 인사들은 김 대표의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 일의 발단이 된 '살생부 논란' 즉, '친박계가 작성한 비박계 40명의 살생부가 존재한다'는 내용을 김 대표가 언급한 데에 사과를 하라고 총공세를 펼치고 나서면서 현실화됐다.
"정두언하고 얘기할 준비가 돼 있어."
윤 의원은 문제의 전화통화에서 정두언 의원과 얘기하겠다고 했다. 이 살생부의 존재를 김 대표로부터 들었다고 폭로하고 나선 비박계 정두언 의원과도 문제해결을 모색하겠다는 것이다. 이 발언 또한 현실화됐다. 정 의원은 28일 윤 의원으로부터 전화가 왔지만 행사참석중이어서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취중에 흥분한 상태에서 억울함을 토로하던 중 잘못된 말을 했다"는 윤 의원의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전화통화 당시가 취중이었다는 게 사실이라 해도 그 때 한 말이 모두 현실화됐기 때문에 본심과 다른 말을 했다고 볼 순 없다.
문제는 윤 의원의 욕설이 아니라 김 대표에 대한 공세, 김 대표를 비롯한 비박계에 대한 공천배제에 대한 친박계의 논의 혹은 '집단의지'가 형성돼 있었다는 점이다. 또한 현재의 새누리당 공천시스템이 윤 의원이 전화를 해서 공천배제 강조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상황이란 게 확인됐다는 점이다.
그동안 공천시스템 개혁에 대한 친박계의 조직적이고도 지속적인 저항도 이런 측면에서 곧바로 이해된다. 대통령과 가깝다는, 소위 친박 세력들은 김 대표의 상향식 공천 방침에 번번이 태클을 걸었다. 친박계는 여론조사 경선에 왜곡·조작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 가장 필수적인 휴대폰 안심번호를 도입하는 데에도 반대 목소리를 내왔다. 급기야는 공천관리위원장에 친박계 이한구 의원을 앉혀 김 대표가 꾸준히 추진해온 상향식 공천을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렸다.
윤 의원의 막말이 알려지면서 터져나온 새누리당의 공천 갈등으로 분명해진 것은 새누리당이 당원과 유권자를 향해 공약한 상향식 공천을 무력화하는 걸 넘어 전당대회에서 선출한 당 대표의 공천도 배제시킬 수 있는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공천권을 당원과 시민이 아니라 대통령과 가까운 일부 의원들이 좌지우지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이다.
윤 의원이 김 대표에 막말을 사과하는 게 해법이 아니다. 윤 의원의 '김무성 공천 배제 강조지시 전화'를 받은 이는 누구인지부터 밝히고 공천(公薦)을 사천(私薦)으로 만든 이들부터 솎아내는 게 기본이다. 거대 여당으로서 국회의원 후보자를 내면서 유권자에게 표를 달라고 하려면 적어도 '일부 친박이 논의해 세운 후보입니다'라고 할 순 없지 않은가.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