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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통령 과거 발언 돌아보면 ‘국정화 수수께끼’ 풀린다

자연산약초 2015. 10. 19. 20:27

박대통령 과거 발언 돌아보면 ‘국정화 수수께끼’ 풀린다

 

박대통령 과거 발언 돌아보면 ‘국정화 수수께끼’ 풀린다

등록 :2015-10-19 11:23수정 :2015-10-19 19:50

  • “아버지가 억울하게 당하셨는데 어떻게 벗겨 드려야 되나
    4·19 계승한 5·16 혁명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이 존재했겠나
    ‘유신만이 살 길’이라 떠들던 사람들 말 바꾼 걸 보니 서글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박근혜 대통령의 강한 집착을 ‘엔진’으로 삼아 추진되고 있다. 보수진영에서도 반대 의견이 많은 국정화를 박 대통령은 왜 이토록 밀어붙이는 걸까? 박 대통령의 역사관을 들여다보지 않고는 이해하기 쉽지 않다. 인터뷰, 자서전, 공개석상 발언 등에 비친 박 대통령의 역사관을 살펴보자.

1989년 인터뷰, “5·16은 구국의 혁명”

박 대통령은 1989년 MBC ‘박경재의 시사토론’에 나와 5·16에 대해 “구국의 혁명”이라며 “부모님에 대해 잘못된 것을 하나라도 바로잡는 것이 자식 된 도리가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또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2007년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대선후보 경선 때도 같은 입장을 보였다.

2012년 대선에선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으로 다소 변화했다. 그러다 과거사 논란이 가라앉지 않자 2012년 9월 24일 “5·16, 유신, 민혁당(인혁당의 잘못) 사건 등은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로 인해 상처와 피해를 입은 분들과 그 가족들에게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1989년 인터뷰 주요 발언이다. (바로 가기: 인터뷰 전문 )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저는 아버지에 대해선 그리운 마음으로 머리끝까지 차있고, 또 어떻게 평점을 내리고 말고 하는 것보다도 아유, 이렇게 억울하게 그동안 당하셨는데 이걸 어떻게 벗겨 드려야 돼나 그런 생각으로 꽉 차있기 때문에 저한테 그런 걸 물으신다는 게…”

*3선 개헌에 대해

“아버지가 3선 개헌을 하시면서 3번 대통령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고 해서 반드시 대통령이 된다는 보장은 아니죠. 그런 기회를 한번 더 원하신 거고 판단은 국민이 하는 거죠. 아버지가 벌여 놓으신 일을, 말하자면 1차 임기 때 계획을 세우시고, 2차 임기는 반도 하지 못하고, 다음 정권에 넘겨주기 위해서 준비하고 사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라든가 웬만큼 살 만한 나라였다면 그냥 임기 채우고 나가고 하면 다 좋은데, 아버지로서는 목숨 걸고서 이 나라에, 일은 벌여 놓았는데 임기는 다가오고 그러니까 국민에게 한번 더 할 수 있는 기회, 이것을 마무리해서 아버지가 마음속에 갖고 계셨던 설계랄까, 그것까지는 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청하신 거지, 그렇게 개헌을 했다고 해도 국민이 싫으면 아, 그분은 대통령을 해선 안 되겠다고 하면 안 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유신에 대해 

“유신에 대해서도 그때 왜 아버지가 유신을 하실 수밖에 없었는가…5천년의 찌든 가난을 물리치는데 그게 1,2년 안에 되겠어요?”

*5·16에 대해

“저는 5.16이 말하자면 구국의 혁명이었다고 믿고 있는데.…요즘 5.16을 평가하는 신문들의 표현을 보면 그 당시 상황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야기가 안 되고 그냥 어떻게 군인이 정치에 개입하느냐, 헌정을 중단시켰다,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는 식의 비판 일변도로 나오는데 저는 그런 글을 읽을 때마다 무슨 생각을 하냐면 그럼 5.16이 없다, 더 나아가 유신이 없다고 할 때 과연 그 5.16을 비판하고 매도까지 하는 사람들이 사랑하는 가족들을 데리고 사는 이 땅이, 이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사람이 굶어 죽어갈 때는 그 사람에게 복지정책이 어떻고는 의미 없는 이야기. 일단 먹여서 살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단 사람을 살리는 것이 최선의 길인데. 나라가 없어지는 판인데 민주주의를 중단시켰다는 이야기가 어떻게 나올 수가 있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나라가 있어야 민주주의가 있는 거니까.”

“그때 민주화가 될 것을 아버지가 중단을 시키셨다는 말도 그래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나라가 있은 다음에 민주화도 할 거 아니겠어요. 나라가 없어지는 판인데 나라가 없어지는 판에 민주화를 할 수 있나요?”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일어난 5·16혁명도 그런 의미에서 4·19의 뜻을 계승하고 있다. 저는 그렇게 보구요. 또 5·16이 있었기 때문에 4·19때 희생된 분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목숨까지 버렸는데 4·19 후 그 혼란의 와중에서 만약 우리나라가 공산당의 밥이 됐다면 그 희생이 무슨 가치가 있어요. 또 더 나아가서 3·1운동도, 6·25사변도, 그때 많은 우리 선조가, 앞서간 분들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희생을,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내놓으셨는데 그것도 5·16때 나라가 공산당한테 먹히지 않았기 때문에 그 희생이 값진 거고 헛되지 않은 거지, 만약에 나라가 여차직했다 하면 그 희생이 다 헛된 것 아니겠어요?”

2007년 자서전, “아버지에 대한 공격 도를 넘어”

박 대통령은 2007년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에서 아버지 박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평가에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는 “유신 때는 ‘유신만이 살 길’이라고 떠들던 사람들이 아버지의 죽음 이후 ‘그때 무슨 힘이 있어 반대할 수 있었겠느냐’고 말하는 것을 보니 인생의 서글픔이 밀려왔다”고 배신감을 토로하기도 했다. 자서전 주요 대목이다.

“18년간 한 나라를 이끌어온 대통령으로서 사후에 정치적 평가를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이 새로운 권력에 줄을 서고자 하는 사람들에 의해 거짓과 추측, 비난 일색으로 매도되고 왜곡된다면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버지가 이루셨던 일을 폄하하고 무참히 깎아내리는 것도 모자라 무덤 속에 계속 아버지에 대한 인신공격은 그 도를 넘어서고 있었다.”(146쪽)

“유신 때는 ‘유신만이 살 길’이라고 떠들던 사람들이 아버지의 죽음 이후 ‘그때 무슨 힘이 있어 반대할 수 있었겠느냐’고 말하는 것을 보니 인생의 서글픔이 밀려왔다.”(146쪽)

“아버지에 대한 매도가 계속되었다. 나는 가만히 그렇게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나의 눈에 비친 아버지는 당신의 조국, 대한민국 이외의 사심은 결코 없었다. 아니, 그보다 그분의 마음과 머릿속에서 결코 떠날 줄 모르는 ‘조국의 근대화’라는 일념은 다른 무엇도 들어갈 틈을 주지 않았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아버지의 오명을 벗겨드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남기고 가신 것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나는 아버지에 대한 평가를 바로잡기 위해 시작한 ‘부모님 추모사업’이 자식 된 도리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믿고 있다. 아버지에 대한 재평가 작업을 시작하는 한편, <겨레의 지도자>란 책을 발간하고 <조국의 등불>이라는 영화도 만들었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로 여론도 조금씩 진실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서서히 아버지에 대한 재평가가 시작되었다.”(153쪽)

“나는 아버지와 그 세대가 이 땅의 산업화를 위해 흘린 땀과 눈물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만큼,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애쓰신 분들에 대해서도 높이 평가한다. 사실 아버지 시절에는 북한의 남침 위협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고, 가난과 배고픔에서 벗어나는 것이 무엇보다 급선무였기에 ‘민주화’라는 측면에서 보면 부족한 면도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민주화운동을 하다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으신 분들도 계셨다. 나는 그분들에게 항상 죄스러운 마음을 가져왔다. 대한민국의 오늘을 만드는데 그분들의 희생 또한 값진 것이었다. 나는 그분들에게 제대로 보답하는 길은 아버지가 못다 하신 민주화를 활짝 꽃피우고, 잘사는 나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153쪽)     

김원철 김남일 기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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