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부자는 한국 부자와 사는 법이 다르다
시사INLive 신호철 기자 shin@sisain.co.kr 입력 2009.04.23 09:54 수정 2009.04.23 19:33 누가봤을까?올릴라 요르마 노키아 회장(위)은 자기 소득의 절반 가까이를 세금으로 낸다. 핀란드의 무상교육 제도와 사회복지 제도는 정부의 막강한 재정 지원으로 유지된다. 정부의 재원은 세금에서 나온다. 따라서 탈세를 막는 것은 사회를 유지하는 중요한 버팀목 중 하나다.
탈세하고 싶은 부자의 욕망은 한국이나 핀란드나 마찬가지. 하지만 핀란드 부자는 탈세하기 쉽지 않다. 핀란드는 온 국민의 소득과 세금 내역을 대중에게 공개하는 나라다.
핀란드에서 시청이나 구청 같은 곳에 가면 전화번호부처럼 생긴 책자가 놓여 있다. 이 책에는 해당 지역 주민의 이름, 전년도 소득, 전년도 납부 세금이 나와 있다. 말하자면 이웃집이 돈을 얼마나 버는지 동네 사람이 다 안다. 사정이 이러니, 한국의 잘나가는 성형외과 의사가 '소득 100만원' 신고하는 식의 기만이 핀란드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온 국민의 소득·세금 내용 공개
과거 한국이나 일본 정부도 '100대 부자 소득세 내역'처럼 일부 제한된 상위 소득자 명단을 공개한 적이 있다. 하지만 핀란드처럼 모든 국민의 소득 자료를 공개하는 풍경은 스웨덴·노르웨이 등 노르딕 국가만의 특징이다.
매년 11월 이 리스트가 공개되는 날이면 핀란드 언론사 기자들은 흥분한다. 소득세 상위 랭킹 1000위, 10000위는 물론이고 연예인 순위를 따로 뽑아 차례를 매긴다.
핀란드인 미카엘 카플란 기자에게 "이건 프라이버시 침해가 아니냐?"라고 물었다. 카플란 기자는 "핀란드는 프라이버시 보호라면 세계 어느 나라보다 철저하다. 소득과 세금은 프라이버시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의 정보에 속하는 것이다"라고 답했다.
소득 공개는 꼭 탈세 방지만이 그 목적이 아니다. 예를 들어 저소득 지원 혜택을 받는다든지, 저소득층에게 가산점을 부여하는 곳에 지원하는 등 자신의 소득 정보를 공개해야 할 일이 빈번하다. 교통신호 위반으로 경찰에 적발됐을 때 경찰이 묻는 첫마디는 '당신 소득이 얼마냐'이다. 벌금 액수가 소득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2000년 11월에 있었던 사건 하나를 소개한다. 닷컴 붐을 타고 부자가 된 야코 리촐라(당시 27세)가 시속 40km 제한 도로를 시속 70km로 달리다가 경찰에 적발됐다. 그가 문 벌금은 8500만원이 넘었다.
핀란드 부자 리스트를 보노라면 IT·닷컴 창업가가 많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아버지에게 기업을 물려받은 '2세 부자'는 극히 드물다.
지난해 11월에 발표된 2007년도 소득 순위를 보자. 자본 소득 1위는 발명가 괴란 순드홀름이다. 2007년 1416억원을 번 그는 '핀란드의 에디슨'이다. 오로지 아이디어와 맨주먹, 열정밖에 없었던 그는 열일곱 살 때 처음 발명 특허를 낸 이후 지금까지 발명 특허를 수백 개 얻어 부를 쌓았다.
↑ '핀란드의 에디슨' 괴란 순드홀름
핀란드 노동 소득 1위는 역시 핀란드 '국민기업' 노키아 회장 올릴라 요르마다. 그도 2세 기업가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시티은행을 거쳐 1985년 노키아에 입사하고, 1992년 회장이 된 후 쓰러져가던 이 회사를 일약 세계적인 모바일 기업으로 변모하게 했다.
위 두 사람 외에 부자 명단에 오른 사람은 대다수가 오로지 머리와 발로 부를 일군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물론 자본 소득 순위 5위에 오른 에르코 아토스 회장처럼 가문의 대를 이어 경영을 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고, 이하무오틸라 미카(노동 소득 순위 3위)처럼 할아버지가 장관, 아버지가 대학총장을 지낸 뼈대 깊은 가문 출신도 있지만, 흔한 사례는 아니다.
과거 한국이나 일본의 소득세 고액 납세자 명단에 오른 사람은 주로 가족 기업의 2세나 3세가 많았다. 그래서 몇 년 전 평범한 샐러리맨 출신의 고레카와 긴조가 주식 투자로 돈을 벌어 고소득 순위 1위에 올 랐을 때 일본 사회가 흥분하고 그의 자서전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핀란드 사회에서 이런 성공 신화는 흔히 있는 일이다. 해마다 발표되는 부자 리스트를 보며 핀란드 젊은이는 '나도 노력하면 저들처럼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진다.
↑ '핀란드의 워런 버핏' 사이라넨 세포
"부유층 요구 들어주는 정치인은 도태된다"
핀란드 부자는 그 출신이 다른 만큼 사고방식도 한국 부자와는 다른데, 이는 핀란드 사회가 유지되는 또 하나의 버팀목이다. 먼저 이들은 자기 자녀를 '서민의 아들딸'과 섞어 키우는 데 거부감이 없다. 헬싱키 비주얼 아트 고등학교 메르비 윌만 교장은 "요르마 노키아 회장이 우리 동네에 사는데 세 자녀를 모두 일반 평준화 공립학교에 보냈다"라고 말했다. 요르마 회장에게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그녀의 기억이 틀릴 것 같지는 않다. 핀란드에는 사실상 사립학교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핀란드 외교부 외교관 유리 세팔라 씨에게 "핀란드 부자들은 왜 평준화 교육에 반대하지 않는가? 자기들만을 위한 특별한 학교 설립을 요구하지 않느냐?"라고 물었다. 세팔라 씨는 질문의 의미를 한참 이해하지 못하다 이렇게 답했다. "부유층의 일방적 요구를 들어주는 정치인은 선거에서 살아남지 못할 겁니다."
어느 나라나 그렇듯 핀란드 부유층은 정부에 이런저런 불만이 있지만, 교육과 세금에 관한 한 놀랍도록 저항이 적다. 50%를 넘나드는 살인적인 소득세율도 순순히 따른다(한국은 최고 소득세가 35%이지만, 부유층의 반발이 거세지자 정부는 내년부터 33%로 내릴 계획이다). 노키아 주변에서 한때 핀란드 본사 이전설이 나온 것은 세금 때문이 아니라 규제 때문이었다.
물론 이런 대비가 핀란드 사회가 한국보다 무조건 다 좋다거나, 핀란드인의 유전자가 특별히 더 우리보다 깨끗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한 핀란드 방송기자는 "사실 핀란드 부자 가운데도 여러 방법을 동원해 탈세하려는 사람이 있다. 예를 들어 소득 내역은 공개되지만 자산 내역은 공개되지 않는 점을 악용해 자산 보유를 늘리는 편법을 쓰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아무튼 문제는 인간의 이기심을 견제하는 투명한 제도와 이를 받아들이는 부유층의 관용이다. 핀란드는 지난 5년간 국가청렴지수(CPI)에서 5위권을 벗어난 적이 없다.
신호철 기자 / shin@sisain.co.kr
- 정직한 사람들이 만드는 정통 시사 주간지 < 시사I
탈세하고 싶은 부자의 욕망은 한국이나 핀란드나 마찬가지. 하지만 핀란드 부자는 탈세하기 쉽지 않다. 핀란드는 온 국민의 소득과 세금 내역을 대중에게 공개하는 나라다.
핀란드에서 시청이나 구청 같은 곳에 가면 전화번호부처럼 생긴 책자가 놓여 있다. 이 책에는 해당 지역 주민의 이름, 전년도 소득, 전년도 납부 세금이 나와 있다. 말하자면 이웃집이 돈을 얼마나 버는지 동네 사람이 다 안다. 사정이 이러니, 한국의 잘나가는 성형외과 의사가 '소득 100만원' 신고하는 식의 기만이 핀란드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과거 한국이나 일본 정부도 '100대 부자 소득세 내역'처럼 일부 제한된 상위 소득자 명단을 공개한 적이 있다. 하지만 핀란드처럼 모든 국민의 소득 자료를 공개하는 풍경은 스웨덴·노르웨이 등 노르딕 국가만의 특징이다.
매년 11월 이 리스트가 공개되는 날이면 핀란드 언론사 기자들은 흥분한다. 소득세 상위 랭킹 1000위, 10000위는 물론이고 연예인 순위를 따로 뽑아 차례를 매긴다.
핀란드인 미카엘 카플란 기자에게 "이건 프라이버시 침해가 아니냐?"라고 물었다. 카플란 기자는 "핀란드는 프라이버시 보호라면 세계 어느 나라보다 철저하다. 소득과 세금은 프라이버시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의 정보에 속하는 것이다"라고 답했다.
소득 공개는 꼭 탈세 방지만이 그 목적이 아니다. 예를 들어 저소득 지원 혜택을 받는다든지, 저소득층에게 가산점을 부여하는 곳에 지원하는 등 자신의 소득 정보를 공개해야 할 일이 빈번하다. 교통신호 위반으로 경찰에 적발됐을 때 경찰이 묻는 첫마디는 '당신 소득이 얼마냐'이다. 벌금 액수가 소득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2000년 11월에 있었던 사건 하나를 소개한다. 닷컴 붐을 타고 부자가 된 야코 리촐라(당시 27세)가 시속 40km 제한 도로를 시속 70km로 달리다가 경찰에 적발됐다. 그가 문 벌금은 8500만원이 넘었다.
핀란드 부자 리스트를 보노라면 IT·닷컴 창업가가 많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아버지에게 기업을 물려받은 '2세 부자'는 극히 드물다.
지난해 11월에 발표된 2007년도 소득 순위를 보자. 자본 소득 1위는 발명가 괴란 순드홀름이다. 2007년 1416억원을 번 그는 '핀란드의 에디슨'이다. 오로지 아이디어와 맨주먹, 열정밖에 없었던 그는 열일곱 살 때 처음 발명 특허를 낸 이후 지금까지 발명 특허를 수백 개 얻어 부를 쌓았다.
핀란드 노동 소득 1위는 역시 핀란드 '국민기업' 노키아 회장 올릴라 요르마다. 그도 2세 기업가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시티은행을 거쳐 1985년 노키아에 입사하고, 1992년 회장이 된 후 쓰러져가던 이 회사를 일약 세계적인 모바일 기업으로 변모하게 했다.
위 두 사람 외에 부자 명단에 오른 사람은 대다수가 오로지 머리와 발로 부를 일군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물론 자본 소득 순위 5위에 오른 에르코 아토스 회장처럼 가문의 대를 이어 경영을 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고, 이하무오틸라 미카(노동 소득 순위 3위)처럼 할아버지가 장관, 아버지가 대학총장을 지낸 뼈대 깊은 가문 출신도 있지만, 흔한 사례는 아니다.
과거 한국이나 일본의 소득세 고액 납세자 명단에 오른 사람은 주로 가족 기업의 2세나 3세가 많았다. 그래서 몇 년 전 평범한 샐러리맨 출신의 고레카와 긴조가 주식 투자로 돈을 벌어 고소득 순위 1위에 올 랐을 때 일본 사회가 흥분하고 그의 자서전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핀란드 사회에서 이런 성공 신화는 흔히 있는 일이다. 해마다 발표되는 부자 리스트를 보며 핀란드 젊은이는 '나도 노력하면 저들처럼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진다.
"부유층 요구 들어주는 정치인은 도태된다"
핀란드 부자는 그 출신이 다른 만큼 사고방식도 한국 부자와는 다른데, 이는 핀란드 사회가 유지되는 또 하나의 버팀목이다. 먼저 이들은 자기 자녀를 '서민의 아들딸'과 섞어 키우는 데 거부감이 없다. 헬싱키 비주얼 아트 고등학교 메르비 윌만 교장은 "요르마 노키아 회장이 우리 동네에 사는데 세 자녀를 모두 일반 평준화 공립학교에 보냈다"라고 말했다. 요르마 회장에게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그녀의 기억이 틀릴 것 같지는 않다. 핀란드에는 사실상 사립학교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핀란드 외교부 외교관 유리 세팔라 씨에게 "핀란드 부자들은 왜 평준화 교육에 반대하지 않는가? 자기들만을 위한 특별한 학교 설립을 요구하지 않느냐?"라고 물었다. 세팔라 씨는 질문의 의미를 한참 이해하지 못하다 이렇게 답했다. "부유층의 일방적 요구를 들어주는 정치인은 선거에서 살아남지 못할 겁니다."
물론 이런 대비가 핀란드 사회가 한국보다 무조건 다 좋다거나, 핀란드인의 유전자가 특별히 더 우리보다 깨끗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한 핀란드 방송기자는 "사실 핀란드 부자 가운데도 여러 방법을 동원해 탈세하려는 사람이 있다. 예를 들어 소득 내역은 공개되지만 자산 내역은 공개되지 않는 점을 악용해 자산 보유를 늘리는 편법을 쓰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아무튼 문제는 인간의 이기심을 견제하는 투명한 제도와 이를 받아들이는 부유층의 관용이다. 핀란드는 지난 5년간 국가청렴지수(CPI)에서 5위권을 벗어난 적이 없다.
신호철 기자 / shi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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